이전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즉, 오인된 정보 또는 오인되는 주변상황에 우리는 우리의 기본적인 논리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에게 정확한 정보가 제공된다면 우리는 선택이 가능한 사람인지 궁금하게 되는데 이런 답을 얻기 위해서 유명하고도 반인권 실험 유명한 사건들을(하지만 중요한) 언급하고 싶습니다.


 3. 상황을 안다면 선택가능한가? - 스탠포드 감옥실험

  항상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들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서술할 실험은 그 ‘주의’의 부족으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던 실험 중 하나인데, 실재로 이 내용은 엑스페리먼트(The Experiment, 2001)라는 영화와 소설로 각색이 된 실험으로 실재의 실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이제 이 실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이렇습니다.

 
실험은 스탠포드 대학교 심리학부 지하에서 시작되는데, 24명의 지원자를 받아 교도과과 죄수로 나누어 그 역할에 맞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지원자들은 중산층 가정에서 비교적 좋은 가정환경과 교육환경에서 자란 남자들로 범죄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사실 이 실험의 목적은 교도관과 죄수의 역할을 통해서 감옥상황을 이해와 그 특별한 상황에서의 몰개성화[각주:1]를 확인함이였습니다. 물론 그 목적에 대해서 피 실험자들에게는 공지하지 않았습니다.

 

스탠포드대 감옥실험은 소설 및 영화로 제작 되었다.


 첫 만남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나눌 때 피 실험자들은 교도원의 역할에 대해서 불편해서 죄수를 신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합니다. 하지만 피 실험자의 역할에 관해서는 선택이 아니라 임의로(랜덤으로) 뽑아서 결정하였고 선발된 9명의 교도관은 카키색 단체복을 입었으며 제압용 곤봉과 눈을 가릴 수 있는 선글라스를 지급하고 3인씩 3교대로 교도관 업무를 실시하였고 죄수로 선발된 9명은 3명씩 3개의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각주:2]

 
교도관들은 죄수의 집에 들어가 그들을 연행했으며 수감되는 과정 또한 동일하게 하였는데, 특히 죄수 역할의 피 실험자에 대해서는 모의 감옥이라 설명치 않고 스탠포드 주립 교도소라고 고지한 채 연행함으로써 더욱더 실험에 집중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실재적으로 실행되는 실험이긴 하지만 피 실험자 스스로 자신이 실험 중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언제나 자신이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음을 미리 공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랍게도 예측을 벗어났고 생각지도 못한 이른 순간 통제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첫날에는 분위기가 좋았으나 사소한 갈등으로 시작한 교도관과 죄수들이 각각의 의견들과 요구하기 이르렀고 끝내는 권력구조의 양상을 띄었습니다. 결국 둘째날 새벽에 터집니다. 한 간수는 밤새도록 죄수들을 깨워 번호를 외우게 하였고 이에 반항하여 죄수들이 소요를 일으키고 맙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래가지 못했고 금새 교도관들은 진압하였는데, 이에 보복으로 폭동을 일으킨 죄수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각주:3] 육체적인 제제는 애초에 금지했기에 교도관들은 언어적으로 그리고 위생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합니다.[각주:4]

 
 이런 와중에 한 죄수가 정신착란을 일으켜 버립니다.

결국 상황이 인간을 만들어 버렸다.



 실험진은 그 죄수를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이런 결과에도 굴하지 않고 실험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죄수들 사이에서 퍼지자 저항은 격렬해졌고 결국 교도관들은 신체적인 학대가 시작되었고, 다섯째 날에는 성적인 학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상황이 실험임에도 불구하다는 것을 모두 아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 실험은 단 5일만에 종료됩니다.

 
이렇게 설명하기도 긴 이 실험이 단 5일만의 일인데, 제가 더 의아했던 부분은 연구진입니다. 연구진들은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그 실험을 계속해갔습니다. 특히 5일째 종료를 한 이유도 연구진 내부의 의견이 아니라, 이 실험자의 총책임자의 동료이자 애인이 이 실험을 견학하러 왔다가 처참한 실험 현장에 대해 경악을 한 후 였던 것이였습니다. 또한 한가지 더 의문은 피 실험자 전원은 언제든 이 실험에서 나올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고문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그 자리를 지켰다는 점입니다. 대체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4. 상황을 알고 있다면 선택가능한가?

 
이 글의 오랜 방황을 이제 마무리 짓고 본래의 글귀로 돌아가보자면, 위 실험은 지난 글과 다르게 실험자들이 자신이 실험자임을 다 알고 있었으며 언제든지 자신이 이 실험에서 뛰져나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누군가 실험중이고 곧 너는 맞게 되는 상황이 올꺼야 그럴떄 싫으면 꼭 나오고 싶다고 말해 라고 제시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실험을 포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실험에서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2명의 포기자가 있었는데, 첫번째 포기자는 위에서 언급한 정신착란을 일으킨 죄수[각주:5]이며 한명은 폭동을 주도하여 독방에 갖힌뒤 온갖 고문을 당한 사람이였는데 이 사람은 연구진이 실험에서 포기하자고 제안하자 자신은 죄수이므로 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후에 오랜시간 동안 설득을 해서 실험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자, 이제 다시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정확한 정보가 제공된 상황에서 선택가능할까요?"

당신이 정보가 있다면 당신의 선택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실험을 뒤돌아 본다면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은 거짓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복종했으며 자신의 모든 선택이 자신의 역활 혹은 거짓 상황에 매여있었습니다. 즉 내가 지금 선택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의 상황이 나에게 이렇게 선택함을 강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선택의 역활이 나에게서 나오지 않고 나의 의지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신의 선택이 될 수 있을까요?

 
연구진의 행동을 보아도 이 점은 확실해 집니다. 사실 연구진들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통제가능한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당하고 비도덕적인 사건 속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이 실험의 피 실험자는 교도관 역활과 죄수 역활뿐만 아니라 연구진 그들도 스스로도 실험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자유의지를 획득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당신은 지금 당신 주면의 상황의 역활에서만 선택하는 맞춤형인간은 아닌가요?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면 어떤 업체의 목표가 있다고 치면, 그 목표에 따른 진행이 이어짐에 따라 각자의 역활을 맡게 됩니다. 학교로 따지면 교장-교감-교사-학생의 이런 역활들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교육의 목적이 학교의 목적으로 도치되고, 교사의 목적이 교장(혹은 교감)의 목적이 투사 되는 순간, 교육의 선택은 학교의 발전에 있고 교사의 선택은 교장(혹은 교감)의 이력서(혹은 결과보고서)의 한줄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경우 당신이 학생의 역활이라면 당신은 확실히 당신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예를들어 학교의 목표가 혹은 욕심이 그리고 사회에서 제공하는 모든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능이라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당신이 학생이란 역활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습니까? 저는 왠지 답을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당신"이란 개념은 코너에 몰린 것 같습니다.


  5. 결과를 알고 있다면 선택가능한가? - 밀그램 전기충격 실험

 
또 한가지 선택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과연 "선택을 믿는 당신은 만약 결과를 알고 있다면 선택 가능한가?"입니다.

조금 다르게 질문하자면,

<죽음 후에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갈림길 앞에서 먼저 도착한 사람이 나중에 도착한 이에게 오른쪽 길로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정표에 분명 지옥이라고 써있고, 유황냄새 나는 불이 저만큼 보입니다. 그럼 당신은 오른쪽으로 가겠습니까?>

이에 관련된 실험 한가지를 다시 열어보면, 스탠포드대학의 모의감옥실험 이전에 있었던 밀그램 전기충격실험을 들 수 있습니다. 실험은 간단한데, 사람들을 2인 1조로 묶어 한명을 교사, 한명을 학생으로 나눕니다. 그 다음에 학생을 전기의자에 앉치고 전선을 교사 앞에있는 15볼트에서 450볼트까지 단계적으로 전압을 올려 충격을 줄 수 있는 장치에 연결합니다. 그 다음 교사는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틀리면 15볼트씩 올리면서 충격을 주도록 합니다. [각주:6]

(이미지 출처 : 위키)



 참고로 이야기 하자면 15볼트는 따끔한 정도이며 450볼트는 즉사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요? 결론 부터 이야기 하자면, 65%의 사람들이 450볼트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것도 큰 고민 없이 말이죠. 그들은 실험을 위해 살인과 동일 수준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제 이 실험을 다시 이야기 하자면, 실제로 피실험자는 '교사'한명이였습니다. 즉 학생역활은 이 실험의 고용된 스탭이였으면 당연히 전기의자는 가짜였습니다. 이때 학생을 '연기'하던 그들은 교사 역활이 누른 볼트수를 방안에서 몰래 볼수 있었으며 그 볼트 수에 따라서 고통스런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실험주제도 사실 <권의에 대한 복종>이였죠.

 실험 후엔 실험에서 교사역을 했던 실제 피실험자는 실험 후에 자신이 사람을 죽이는 선택을 했던 것에 충격을 받아 정신 치료까지 받았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실험 책임자는 비윤리적 실험이였다는 비판 속에 대학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실제 모집 홍보물(출처 : 위키)


 그들은 정말 450볼트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은 이미 그 전기의자의 충격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선택했습니다. 450볼트의 살인을. 역시 의문인 점은 그들이 굳이 실험을 통해서 살인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어쩜 우리는 복종하는 것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이 실험을 적용하여 위 질문을 대답하자면 지옥 문앞에서 이런 후회를 하게 될 것 입니다. "어? 아까 어떤 사람이 지옥으로 가라해서 여기로 왔습니다."라고 말이죠. 즉, 결론을 알더라도 우리는 어떤 권위에 대해서 복종하는 심리적인 기저를 지닌 것입니다.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더 극적으로 설명하자면 그 것이 나에게 절대적으로 나쁜 선택이라 할지라도 권력이라는 것에 우리는 '선택'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실험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복종한다는 것을 말이죠.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복종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는 권력에, 어떤이는 연말 연봉협상에, 또 어떤 이는 실험진의 450볼트 전기충격하라는 명령에.


 
6.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한가?

 
이렇게 글을 쓰고 보면 우리는 전혀 선택불가능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내가 판단하는 것은 타인이 심어준 비의도적인 명령이거나(주제1) 혹은 정보의 순서에 따라 오판한 것인지(주제2) 혹은 상황에 너무 적응해버린 탓인지(주제4),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복종일것인지(주제5)...

복종은 우리의 본능일까?



 
사실 그렇다면 우리가 갖어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게임을 해서 항상 이긴다고 하면 그것이 게임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맨유가 항상 이겨서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지는 적이 있어 더 재미있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선택이란 것을 계속 되뇌어봐도 그 결론이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저 나란 존재는 주변 자극에 너무나 쉽게 그대로 반응하는 수학문제집의 해설서 같은 느낌입니다.

 
사실 신에게 조금 묻고 싶은 면이 있는데, 그것은 그대가 갖는 신이라는 존재는 선택을 한 것인지 말입니다.

과연 우린 '선택'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 '선택'이란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갖는 무엇인가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나는 확신합니다.(혹은 하고싶습니다.) 그러기에는 비극적인 실험결과만이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며, 무엇인가 이런 비극을 종료시켜줄 이야기를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가 나 자신도 모르게 복종하는 것이 본능이라면 우리가 스스로 '선택가능하다.'라고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른 곳에서 나오는 직감 아닐까요? 그 직감에 대한 처절한 증명은 다음글로 미루겠습니다.


  1. 집단에 소속되어서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본문으로]
  2. 나머지 인원은 예비인원임 [본문으로]
  3. 특히 다른 죄수들을 뒤돌아 있게 만든후 팔굽혀 펴기를 한 것은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방식과 유사했다. 유독 더 독특한 점은 교도관들이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본문으로]
  4. 대소변을 양동이에 보게 하기도 함. [본문으로]
  5. 강제로 실험에서 제외시킴. [본문으로]
  6. 이때 실험자에게 제시한 이 실험의 주제는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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