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과"적 관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철학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지난 여러 사람들의 말들을 열거하면서 논평하는 일에 그다지 익숙지 않고, 익숙해지려 한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철학을 '똑똑한 말싸움'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수학을 오래 해오거나 혹은 오랫동안 흠모하면서 그 자체의 논리성에 대한 아름다움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고 점점 삶에 대한 수학적 적용 혹은 수학적 사고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에 나에게는 '좌표의 창시자'로 더 익숙한 그 사람, 데카르트.


 하지만 모두에게는 코기토 명제로 익숙한 '데카르트'에 대한 글을 제의(@HansHoon에게)를 받고,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말들 앞에 서고 나니 철학 혹은 말싸움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특히 수학을 하는 자로써 그가 가지는 사고의 흐름은 눈을 뗄 수 없는 멋진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그 구경거리에서 나의 느낌(수학)을 몇 자 적어보려 하지만 몇 번을 읽어도 나는 <성찰>에 대해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내가 이해하고 느낀 점을 적어볼까 한다. 데카드트가 의심을 제일로 섬겼으니 나도 나의 글을 맹신하진 않을 것이다.


 1. 악마의 가설과 꿈의 가설, 그리고 변증


  우리가 말싸움을 자주 하면 알겠지만, 일단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논리도 참으로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논리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혹시 논리의 빈틈이 보일 때 그 사이를 파고드는 나의 생각은 상대방에게 긍정을 이끌기에 가장 좋은 무기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말이다[각주:1]. 데카르트도 말싸움 좀 한 것 같다. 그는 어떤 것을 정의하고 아는 '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심하고 배재하고 마지막엔 부정하면서 까지 자신이 믿는 것들을 공격했다. 그는 자신의 '믿음'에 창을 겨누면서 나올 수 없는 마지막까지 공격해 들어갔다.


 우리가 반대편의 모순을 이용하여 증명하는 방법을 변증이란 한다. 그것은 기초적으로 '명제'의 조건을 갖춘 상태에 이루어지는데, 명제란 것은 기본적으로 '가정'과 '결론'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직접적인 증명은 그 '가정'을 기반으로 '결론'을 완벽히 증명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쉽지가 않다. 특히 그 분야가 철학 같은 인문적인 것으로 넘어가면 더욱더 그런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인가 애매모호 하고 그 분야가 넓을수록 모든 것을 증명해야 기에 확증할 증거는 항상 작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부정할 증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전체를 무너뜨릴 필요 없이 한 분야에 대한 '반례[각주:2]'를 제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떠한 주장을 펼칠 때에는 그에 관한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데, 그 증거를 대기 위해서 데카르트는 가장 어려운 길로 들어선다. 바로 변증의 반대에 서는 것인데,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 반증할 수 있는 구석을 자신이 직접 공격하면서 배제하는 것. 자신이 확신하지 못한 곳이 언제 '반례'의 공간이 될지 모르므로 확실치 않은 곳에는 '무조건 배제'라는 옵션으로 그 기반을 다져가는 것이다. 그 공격의 종착역은 신도 아닌 컴퓨터도 아닌 바로 자신, 그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에 빗대어 자신을 존재를 이야기 한다.  특히 '꿈의 가설'[각주:3]과 '악마의 가설'[각주:4] 통해서 실재한다고 '믿는' 모든 것을 버리게 되는데, 그 사실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있는 한 낮의 밝은 이 카페 2층이 사실은 어두컴컴한 감옥 지하의 어느 독방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정의 끝은 결국 자신이 사유(생각)한다는 것으로, 자기 자신은 부정할 수 없는 마지막 원리를 얻게 된다.


코기토명제 :  "나는 사유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모든 의심나는 곳을 다 틀어막은 데카르트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다. 그러기에 그는 더 이상 이 명제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이렇게 도착한 곳에 대해서는 데카르트는 자신한다. 그곳은 그가 생각하는 한 모든 곳에 대한 반례를 틀어막은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데카르트는 조심스럽다. 왜냐 아무리 의심하지 않으려고 해도 '의심'나는 구석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2. 모든 것 이전의 관념, 공리 혹은 무정의

 이 코기토 명제에 대해 조금 더 말하고 싶은데, 과연 주체인 자신이 자기를 증명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사실 그 일이 절대 쉽지 않다. 러셀의 역리(혹은 이발사의 역리 - 링크)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자신을 증명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을 낳을 수 있다. 그러기에 어느 정도는 여분을 두는 모습이 오히려 이 코기토명제라 생각한다. 그 여분을 놓는 모습이란 "사유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명제를 앞에서 살짝 비워두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위의 코기토 명제는 연역적인 삼단논법의 결과물인데 결론이 나기위해서는 대전제가 존재해야 가능하다.[각주:5] 그런데 데카르트는 그 대명제를 자세히 전파하지 않는다. 그 대전제라는 것은 바로, "사유하는 것이 존재한다."이다.


 비워둔 한 자리, 즉 사유와 존재에 대해서 다시 증명의 칼을 들여놓지는 않는다. 이는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각주:6]의 대화에서도 잘 나오는데 데카르트는 우리가 정의를 내리면 오히려 더 모호해지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단순하고 분명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데카르트는 수학적인 사고에 정통했나 보다. 그것은 바로 수학에서 이야기 하는 무정의 용어라고 불리는 것들이나 혹은 공리라 불리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공리라 불렀을 때의 장점? 그것은 심판을 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들에 근거를 들었을 때, 이어지는 논증이더라도 어느 부분 앞에서는 더 이상 증명할 수도 부정할 수도 원리가 나오게 된다. 판단이 확실하다는 가정 하에서 이 부분에 대해 증명 없이 믿는 것이다. 이런 것과 유사한 수학적 관념이 있는데 그것을 "공리"라고 부르고 어떤 것에 대한 정의를 다른 것에 빗대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들은 수학에서 "무정의 용어"라 부른다. 정확한 개념은 아래에 접어놓겠다.

 

 만약 코기토 명제가 제일 철학 혹은 명제가 된다면, 그전의 명제 혹은 전제인 "사유하는 것은 존재한다."는 바로 공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정의 용어를 뽑아 보자면 바로 "사유"나 "존재"정도가 되겠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것의 근거를 대는 학문으로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수학이다. 하지만 수학은 그 완벽함을 자의적으로 증명하는 '변명'으로 두지 않고 어느 정도 인정함이라는 '불완벽함'속의 '자명함'으로 갖는다.(더 자세한 내용은 불완전성의 원리가 된다. - 링크) 이 구조를 데카르트는 바로 '성찰'에 적용한 것이다.


 데카르트가 1성찰[각주:7]부터 모든 것을 의심나는 것을 모두 버리기로 한 것은 오히려 자기가 꼭 인정해야할 '공리'를 찾기 위한 노력과 같다. 아마도 가장 이런 사고의 영향을 준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일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것은 '점, 선, 면'이라는 무정의 용어와 5가지의 공리(혹은 공준)으로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같이 선을 긋거나 길이를 가지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5가지의 주춧돌을 사용하여 논리적으로 이끌어 나간 것이다. 보통 우리가 기하학이라 하는 것은 중고등학교때 증명하는 삼각형이나 원의 그림을 그 논리성에 맞게 증명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히려 기하학은 도형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도형으로 '확인'되는 학문인 것이다.


 그러기에 데카르트의 성찰의 근본은 참으로 수학적이다.



 3. 코기토 - 존재와 사유 사이에 함수를 공리로 다시 세우다.

 제 3성찰에는 '신 증명'이라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데, 그 '신 증명'의 기본원리가 재미있다. 여기에서 하나의 '공리'가 하나 더 발제 되는데, 그 공리는 '결과가 있다면 그것이 기초되는 원인이 '반드시' 존재 하며, 그 원인은 결과보다 적어도 같거나 커야 한다.'이다. 이는 함수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성질이다.


 즉 만약 X란 집합에서 Y란 집합으로의 함수 가 있다고 하자. 이때 Y속에 어떤 부분을 B라고 했을 때, B가 이미지가 되는 X의 원소 즉, 는 적어도 B의 크기보다 크다. 기호로 쓰자면 n()≥n(B) 이다.(이해를 위해 아래 접기에 그림으로  간략히 설명했다.) 데카르트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원리는 바로 이것에 의존했다. 또한 이 식을 이용하면 3성찰의 '신 증명'을 함수와 집합으로 표현 가능 한데 이는 다음과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수식과 그림으로 다시 표현해본다.

1. n()≥n(B)을 그림으로 다시 표현


위 그림에서 Y의 부분 집합 B = {a, b}에 대해서 역상은 보내면 X의 부분집합 = { 1, 2, 3 }이 되는데, 이렇게 일대일 함수가 아닌 경우에는 가 더 크고 일대일 함수 인 경우에는 와 B의 원소 개수가 같게 된다. 이때 B가 내가 같게 되는 어떤 사유(혹은 관념)이라면,  그 원인이 되는 관념 B의 역상, 즉 원인은 사유에 영향을 미친 존재 가 되는 것이다.


2. 신 증명 수학적 표현으로 재구성


A. 신은 존재한다.

원인과 결과를 통한 피상적 실재성에 대한 함수

 : <X:존재> → <Y:명석 판명[각주:8]한 사유> 라 하고[각주:9]

나는 신이란 관념의 집합을 G, 나의 명석 판명한 사유를 C라 하자.

이때, 나의 사유가 존재 하므로 C ≠ ø이다. (여기서 G, C Y)

내가 신에 대한 명석 판명한 사유를 지니고 있으므로,

C G ≠ ø

따라서,

   ≠ ø

따라서 신의 존재 는 존재한다.


---------------------------------------------------------------------


B. 신의 존재는 나의 존재 안에 있을 수 없다.


이때 만약 신이 나의 존재에 속한다고 가정하자. --- (결론 부정)

먼저, 코기토 명제에 따라 나의 존재를

라 정의하자.


신의 존재가 나의 존재 속에 있다고 가정했으므로

 이고 함수의 성질에 따라, 이므로

n(I)가 된다  --------------(부정된 결론에 의한 결과))


신의 ‘관념(Y의 영역)’은 무한하고, 나의 ‘존재(X의 영역)’는 유한하다.[각주:10]

따라서

 이므로

부정된 결론으로 얻은 결과와 모순이 생긴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 즉, 는 나의 존재 안에 담을 수 없다.


A, B 명제에 따라서 신은 나의 존재를 넘어서 존재한다.




 함수를 이용한 신 증명의 의문점 및 주목할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다시 언급할 예정이므로 이만으로 줄이도록 하고, 지금은 함수적인 요소가 적용된다는 것에 집중하자. 의미를 해석해보면 위 명제에서 쓰인 <존재가 원인으로 사유가 결과로 나타나는 이 함수>는 우리가 받아들였던 공리, 즉 ‘사유하면 존재한다.’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원인과 결과에 따른 함수' 혹은 다른 표현이 되는 ‘사유하는 것의 존재성’이 함수의 성격을 띠면서 다른 부분에 적용이 되어 앞으로 증명될 많은 부분의 기반이 된다는 점으로 함수부분은 줄인다.

(참고 :글 중간에 편의를 위해 위의 함수를 존재-사유 함수라 하겠다.)


4. 사유를 기저로 [데카르트 공간][각주:11]을 완성하다.


 한편, 현대대수학에서는 어떤 공간을 만들어내는 원소를 가리켜 ‘기저’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기저라는 것을 가지고 잘 주무르다 보면, 하나의 공간이 생성되고, 그 생성되는 공간이 어떤 성질을 갖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기저의 성질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성찰도 마찬가지이다. 존재-사유 함수 속에서 기만하지 않는 신과 <명석 판명한 사유>의 조합이 데카르트적 존재란 공간을 생성하고 이 기저가 전체 공간의 성격을 규정한다.


 여기서 혹시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형대수학에서 기저에 대한 정의는 아래에 접어놓겠다.



 특히 6성찰에서는 물질적 사물[각주:12]의 존재성의 증명 전에"내가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내가 이것을 인식하는 대로 신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란 구절을 보면 존재-사유 함수는 [기만하지 않는 신][각주:13]을 통해 잘 정의됨(well-define)을 얻고  존재에 대해서 내가 인식한 <명석 판명한 사유>란 곳으로 사영이 된다. 그러고 보면, 존재-사유에 대한 공리를 세운 데카르트는 이미 존재-사유함수 속에 기만하지 않는 신을 가정하면서‘신을 증명’이란 것 보다는 ‘신의 확인’을 목적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이는 다음글에 간략하지만 더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존재-사유 함수는, 존재의 부분 집합이 함수를 통해 사유의 집합으로 반영된다고 보고 있고(하나의 값보다는 공역의 한 부분이 더 잘 어울린다.) 그러기에 데카르트는 계속되는 존재를 사유의 역으로 증명한다. 또한 개인의 사유의 실수를 만회하는 것으로 존재성에 대해서 신의 역할을 언급하는 것은[각주:14] 역함수에 대한 조심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면으로 처음부터 정리하면 존재-사유 함수 속에  자신을 집어넣어 사유하는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이 유한하고 신이 무한하다는 점을 들어 신들 생성했다. 또한 연속되고 계속되는 조합으로 참과 거짓(4성찰), 신의 재증명(5성찰), 영혼과 물질의 다름(6성찰)등의 공간을 생성한다. 그리고 그 성찰의 기본적인 모든 성질은 공리(명석 판명한 사유)의 성질로 통한다.


 데카르트는 존재의 기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각주:15] 아마도 신에게 모두 맡기는 것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런 구조에서 유추해보자면 그의 생각을 잠시 상상할 수는 있다. 함수적으로 해석하자면 X에서 기저의 집합이 A일 때, f[A]는 Y의 기저가 된다. 이런 면을 이용해면, 만약에 존재의 X 집합에서의 기저가 존재한다면 그 기저가 존재-사유 함수를 통해 사영되면 사유의 집합 Y에서 기저가 된다.즉 우리의 사유의 기저를 잘 생각한다면 그 역인 존재의 기저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오류를 범에 하면 안 된다. 왜냐, 위에서 언급한 기저의 보존은 그 역상에서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존재의 기저를 새길 기회는 되기에 사유의 기저를 찾는 일을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여튼 역상에서의 오류를 피하려한 것인지 데카르트는 명석 판명한 자신의 존재와 다르게 물질적 사물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신의 의지에 살짝 기대어 봄을 느낄 수 있다.(6성찰-기만하지 않는 신)



5. 나의 한계? 그리고 데카르트의 한계?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분야가 눈에 계속 밟힌다. 참 매력적인 책이다. 어쩜 후대에 계속 데카르트의 성찰, 특히 코기토에 대해 계속 언급되는데, 그는 그것을 어찌 예언한 것인지 데카르트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제대로 읽으라 한다. 이해를 못할 이는 1000번을 읽어도 이해 못할 것이라 했는데, 사실 그게 '나'를 말하는 것 같아 사실 이글을 쓰는 데도 자신에게 의문스럽다. 그래도 두렵거나 부끄럽진 않다. 마지막에 그 데카르트도  "삶의 개별적인 일에 있어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며...."라고 성찰을 마무리하지 않는가. 그도 그럴 것인데 나는 어쩌겠는가? 하여튼 '성찰' 한 권에서도 이리저리 수학을 읽고 싶은 내 고집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혹시 나처럼 이렇게 억지스럽게 맞추어질 수학의 퍼즐이 있다면 언제든 공유하고 싶다고 말하며 이만 헛소리를 줄이고 싶지만~

 그래도 잊지 못할 한권이다. 그가 수학적 공리 구조로 펼쳐낸 논리는 수학을 배워가는 이에게  '날(라리) 수학'만 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추천하는 바다.


다음 글은. 신을 법정 앞에 세우다 입니다.
다음 글은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

이글은 @HansHoon @anspruch @No_Goon 이 함께 하는 잡담-발광의

제 1주제에 대한 글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다른 글은 여기 - http://luminescence.tistory.com/3를 참고 하세요


성찰 -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탐구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
국내도서>인문
저자 :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 이현복역
출판 : 문예출판사 1997.09.30
상세보기


  1.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변증의 대표적인 수단이다 [본문으로]
  2. 간단히 설명하자면 명제가 거짓이 되는 하나의 예 [본문으로]
  3. '내가 아는 모든 것이 꿈이다.'라는 가정으로 자아의 모순을 가정한다. [본문으로]
  4. 모든 것이 악마가 나를 속이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꿈의 가설보다 더 강력한 가설이다. [본문으로]
  5. 보통 삼난 논법은 대전제-소전제-결론 [본문으로]
  6. 세명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데카르트의 글로 의심을 통해 코기토명제로 가는 과정을 상대적으로 쉽게 기록하였다. [본문으로]
  7. 데카르트는 각 주제에 걸쳐 6가지의 성찰을 실시하였다. [본문으로]
  8. 한 개념의 내용이 명료한 사태(事態)를 명석이라고 하고, 명석하면서 동시에 다른 개념과의 구별이 충분함을 판명(判明)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9. 이때 X는 원인 Y는 결과가 된다. [본문으로]
  10. 사실 데카르트가 신의 관념이 무한하다는 것도 신에 대한 공리적 관념이다. [본문으로]
  11. 데카르트가 사유한 공간을 말한다. [본문으로]
  12. 데카르트는 물질적 사물을 영혼적 실재와 분리된 개념으로 삼는다. [본문으로]
  13. 데카르트가 신이란 관념에 미리 갖고 있는 신념이다. 역시 이 점도 데카르트가 정한 공리가 된다. [본문으로]
  14. 자신이 바라보는 사유나 감각이 자신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에서 나오는 부분이 있음을 이야기 한다. - 6성찰 [본문으로]
  15. 데카르트는 성찰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중점적으로 탐구하면서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나간다. [본문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