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에 주어진 힐베르트의 문제들
물리학과 수학을 아우르는 문제들로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존재한다.
(문제 및 해결은 위키에서 발췌 - 하나씩 블로그에 채울 예정 )


 

문제

해결

블로그

1

연속체 가설: 정수집합보다 크고 실수의 집합보다 작은 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체르멜로-프란켈 집합론에서 선택공리를 가정하는지의 여부에 무관하게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음이 증명되었다. 이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

설명

(클릭)

2

산술공리들이 무모순임을 증명하라.

괴델겐첸[?](Gentzen)의 결과가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1931년에 증명된 괴델의 제2 불완전성 정리는 산술의 공리계가 자기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음을 보였으며, 1936년에 겐첸은 서수 ε0기초집합이라는 가정을 하면 산술의 무모순성이 증명됨을 보였다.

 

설명

(클릭)

3

부피가 같은 두 다면체에 대해, 하나를 유한개의 조각으로 잘라낸 뒤 붙여서 다른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가?

부정적으로 해결. 덴 불변량을 사용하여 증명.

 

4

직선이 측지선계량을 전부 만들어내라.

해결 여부를 말하기에는 문제의 내용이 너무 애매하다.[1]

 

5

연속군은 언제나 미분군인가?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앤드류 글리슨(Andrew Gleason)이 해결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힐베르트-스미스 추측과 동치인 것으로 해석할 경우에는 여전히 미해결 문제이다.

 

6

물리학 전체를 공리화하라.

미해결. 모든 것의 이론 참고.

 

7

a ≠ 0,1이 대수적 수이고 b가 대수적 무리수일 때, ab초월수인가?

긍정적으로 해결. 겔폰트의 정리겔폰트-슈나이더 정리 참고.

 

8

리만 가설(리만 제타 함수의 임의의 비자명근의 실수부는 2분의 1이다)과 골드바흐 추측(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둘 다 미해결.

 

9

대수적 수체에 대해 성립하는 가장 일반적인 상호법칙을 발견하라.

부분적으로 해결. 유체론의 발전으로 아벨 확장에 대해서는 해결되었으나, 비아벨 확장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은 상태이다.

 

10

임의의 주어진 디오판토스 방정식이 정수해를 갖는지를 판별하는 알고리즘을 제시하라.

부정적으로 해결: 마티야세비치의 정리[?](Matiyasevich's theorem)에 따라 그러한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11

대수적 수를 계수로 갖는 이차 형식의 해 구하기.

부분적으로 해결됨.

 

12

유리수체아벨 확장에 대해 적용되는 크로네커의 정리를 임의의 수체에 대해 일반화하라.

미해결.

 

13

임의의 7차방정식을 2변수 함수들을 이용해 풀라.

해결: 블라디미르 아놀드가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14

특수한 완비 함수족들의 유한성의 증명.

반례가 존재하여 일반적으로는 성립하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15

Schubert's enumerative calculus에 대한 엄밀한 기초를 제시하라.

부분적으로 해결.

 

16

대수곡선 및 곡면의 위상

미해결.

 

17

정부호 유리함수를 제곱의 합의 몫으로 나타내라.

해결: 필요한 제곱의 개수의 상한이 발견되었다.

 

18

정다면체가 아니면서 쪽매맞춤을 할 수 있는 다면체가 존재하는가? 가장 밀도가 높은 공 쌓기는 무엇인가?

해결.[2]

 

19

라그랑지안의 해는 언제나 해석적인가?

긍정적으로 해결: 엔니오 데 기오르기[?](Ennio de Giorgi)가 증명했고, 나중에 존 포브스 내시도 독자적인 방법으로 증명했다.

 

20

경계값 조건을 갖는 모든 변분법 문제들은 해를 갖는가?

해결: 20세기 전체에 걸친 연구의 결과로 비선형적인 경우에 대해 해를 찾을 수 있었다.

 

21

주어진 모노드로미 군을 갖는 선형 미분방정식의 존재성을 증명하라.

해결.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해결로 볼 수 있다.

 

22

보형함수를 이용한 해석적 관계의 균일화.

해결

 

23

변분법의 추가적 발전.

미해결

 



앞에서 건져낸 위대한 발견! 개수를 세는 법입니다.

하나씩 이어가는 방법으로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앞에 주어진 것의 개수를 셀 수 있고
우리도 모르는 세에 하나씩 짝지어 세는 법을 알게 되었으며

두 집단의 개수를 비교를 할 때 하나씩 짝을 지어 놓으면 어느쪽이 더 많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 자연스럽게 얻어진 방법에 이름을 다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하나씩 짝지어짐 - 일대일 대응


수학은 아주 단순 해서 이름을 짓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정확한 일대일 대응은 여기를 클릭!)

이제 이 일대일 대응을 통해서 모든 것의 개수를 비교하고자 합니다.
무한은 이제 신의 위치에서 자연스레 손가락 아래로 내려오게 됩니다.
무한의 입장에서 보면 참 슬픈일이지만
이제껏 홀로 지내온 것을 생각하면 더 알아봐야 할 것 입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가정은(정리는)

자연스러운 일대일 대응을 해보아서
양쪽에 남는 것이 없이 다 짝이 되어진다면
두 개의 개수를 같다고 할 수 있다.

입니다.

먼저 그럼 힐베르트의 호텔(클릭)을 한번 보면
힐베르트 손님들은 만원이였음에도 불구 하고 새 손님에게 방을 배정 할 수 있었고
자연수의 개수 만큼의 사람이 새로 왔음에도 방을 배정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유한의 호텔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힐베르트의 호텔에서는 가능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무한의 성질이며(더 수학적으로 이야기 하면 무한의 정의 입니다.)

자연수 개수 만큼의 손님이 새로 왔을 때 원래 손님들과 새롭게 옮기던 방에 일대일 대응을 적용해보면

(자연수 개수의 원래 손님) <-> (짝수 번호의 방)      
1호실 손님 <-> 2호실
2호실 손님 <-> 4호실


             .     
        .
      n호실 손님 <-> 2n호실     

이렇게 해보니 자연수 개수의 손님과 짝수 번호의 방과 일대일 대응입니다.
신기하지만 어쩜 당연하게 생각되어 집니다.


더 깊히 생각해보면 짝수라는 것이 자연수의 일부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n <-> 2n 으로 대응 시키면
자연수와 짝수가 서로 빠짐없이 일대일 대응한다는 것,,,,

이것의 결론을 내어보자면

  바로 자연수의 개수[전체]와 짝수의 개수[부분]가 같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이해를 하지만 도저히 마음속 깊히 내딛어지 않는 일이지만 무한에서는 가능합니다.
물론 유한의 세계에서는

[부분]=[전체]

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단지 힐베르트 호텔 같이 방의 수가 자연수 개수 라는 무한개 이기 떄문에 가능합니다.
그 렇담 이 성질은 무한과 유한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고 이 사실 자체가 정의 입니다.

무한이란!
(자신의 개수) = (자신의 같지 않은! 일부분의 개수)


참고로 말하자면 이렇게 될 수 없는 것을 이제 유한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우리는 보통 유한을 정의하고 무한을 정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본래는


 무한이 먼저 존재하고

무한이 아닌 것이 유한이라 정의합니다

즉, 무한이 먼저 정의 됩니다.


인지와 반대로 흘러가는 이것들은 좀 더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하곤 합니다.

그것은 다음글에 담겠습니다.
(집합론에서 무한집합의 수학적 정의 클릭)


무한이란 것은 사람의 일반적인 사고로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보통 무한을 바로 이야기 하기 전에는 여러가지 비유를 이야기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힐베르트 호텔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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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힐베르트가 호텔을 열었습니다.
이 호텔은 방이 딱 자연수의 개수만큼 있습니다.

인기가 좋았던 탓인지 
어느날 힐베르트 호텔의 모든 호실에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식지 않는 인기에 모든 호실에 사람이 있지만
호텔을 찾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욕심이 많은 힐베르트는 모든 방이 차있지만
손님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다음과 같이 모든 방에 방송을 합니다.  

  "모든 객실의 손님께서는 다음방으로 방을 옮겨주시기 바랍니다.
1호실은 2호실로,
2호실은 3호실로,
이렇게 n호실은 n+1호실로 얼른 해주세요!"


모든 손님이 이동하자 신기하게도 1호실이 비어버렸습니다.
이에 욕심쟁이 힐베르트는 새로운 손님을 1호실에 배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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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진기한 풍경에 모든 방에 있는 일행들은 각각 다른 일행 하나씩 불러옵니다.
그러다 보니 호텔을 찾는 인원은 2배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욕심도 버릴만하지만
힐베르트는 다시 모든 방에 방송을 합니다.

  "전 호실 분들에게 다시 전파 합니다.
1호실은 2호실로
2호실은 4호실로
3호실은 6호실로
이렇게 n호실은 2n호실로 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홀수방(1,3,5,7,.....2n-1,...호실)이 모두 비어버렸습니다.
욕심쟁이 힐베르트의 호텔은 끝없이 모든 경우에도 자신의 호텔에 인원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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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자연수 개수를 보통



(알레프 0, aleph 0)라고 합니다.
위 이야기를 토대로 보자면
자연수 개수에 1을 더해도 개수는 똑같고
자연수 개수에 2를 곱해서 개수는 똑같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결론과 또 다른 결과를 추가해서 이야기 하자면


입니다. 역시 수학은 이야기를 넘어서면 문제가 생기네요.
여튼 가장 세번째의 사실은 유리수와 자연수의 비교의 증명에서 쓰일 수 있습니다.

 
<힐베르트 호텔의 결론은>
무한 이란 것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곳이며 상식보다는
차가운 이성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다라는 것입니다.
무한은 경험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1862년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서 오토 힐베르트와 마리아 힐베르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판사였다. 김나지움(독일의 고등학교)까지는 수학 이외의 과목에 흥미가 없어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좀 더 개방적인 학교로 옮긴 후 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 수학에서 최우수 성적을 획득한다.

188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입학. 하인리히 베버에게서 수론과 함수론 강의를 듣고, 와중에 당시 유행하던 불변식론을 접하게 된다. 힐베르트의 2년 연하인 헤르만 민코프스키도 베를린 대학에서의 청강을 마치고 쾨니히스베르크로 돌아왔고, 베버의 후임으로 π의 초월성을 증명한 린데만이 오고, 그와 같이 아돌프 후르비츠(Adolf Hurwitz)가 사강사로 부임하여, 힐베르트, 민코프스키, 후르비츠 세 사람은 평생의 친구가 된다.

대수적 형식의 불변성에 대한 문제를 독창적으로 풀어내고, 1884년 12월 구두시험을 통과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다음해 여름 후르비츠의 권유로 펠릭스 클라인이 있던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간다. 1886년 클라인의 권유로 파리 유학을 떠나, 당시 최고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Poincaré)등과 교우하고, 귀국길에 레오폴트 크로네커도 만나게 된다. 귀국 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불변식에 관한 논문과 가 장 일반적인 주기함수라는 제목의 강의시험을 통과하여 교수자격을 얻는다. 1888년파울 고르단(Paul Gordan)을 만나 고 르단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후 라차루스 푹스, 헬름홀츠, 바이어슈트라스, 코르네커등을 방문한다. 1888년 9월 귀향하여 고르단의 문제의 답을 담은 논문을 제출한다.

1892년 30세의 나이로 결혼을 하고, 취리히로 간 후르비츠의 후임자로 부교수 자리에 오른다. 1893년 eπ의 초월성에 대한 기존의 증명과는 다른 증명을 내 놓는다. 곧 뮌헨으로 떠난 린데만의 뒤를 이어 정교수가 된다. 1893년 독일 수학회에서 민코프스키와 당시까지의 대수적 수론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1895년 괴팅겐 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수론보고서(Zahlbericht) 작성에 힘을 기울인다. 1897년 4월 자기 몫을 작성하지 못한 민코프스키와 별도로 수론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것으로 수학계의 명성을 얻는다.1898년 ~1899 년 겨울학기에 행한 기하학의 기초에 대한 강의를 정리하여 기하학의 기초를 발간한다. 여기서 힐베르트는 유클리드 기하학 공리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였다. 나아가 한 공리체계는 완비적이고, 서로 독립적이고, 무모순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기하학의 연구를 계속하며, 디리클레 원리의 결점을 보완하며, 변분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 수학자 회의에서 유명한 힐베르트의 문제들 23개를 제기한다. 1901년 이바르 프레드홀름(Ivar Fredholm)의 논문을 접하고 적분방정식론의 연구에 몰두한다. 1902년 베를린으로부터 푹스의 후임자리를 제안받으나 거절하고, 그 대신 괴팅겐에 민코프스키의 자리를 요구하여 관철시킨다. 1908년 오랜 미제였던 웨어링(Waring)의 문제를 증명하여 수학계를 놀라게 한다. 1909년 오랜 친구였던 민코프스키가 맹장염으로 사망한다.

1912년 적분 방정식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책을 발간한다. 이후 물리학을 수학과 같이 공리적 체계 위에 세우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1915년 11월 아인슈타인일반상대성이론과 거의 같은 시기에 물리학의 기초라는 논문으로 같은 결론을 얻는다.

1차 세계 대전후 브로베르(Brouwer)등의 직관주의에 대항하여 형식주의를 주장한다. 1925년 악성빈혈증에 걸려 사경을 헤맸으나, 미국에 있던 제자들의 도움으로 다음해 쾌유한다. 1928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최된 세계 수학자 대회에 독일의 수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단의 수학자들을 이끌고 참석한다.

1930년 봄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다. 이 해 가을 쾨니히스베르크로부터 명예시민증을 수여받는다. 괴델의 결과로 어떤 공리체계의 무모순성의 증명이 불가능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조건을 약화시켜 증명론을 발전시키려는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80세 때 길에서 넘어져 다친 후 병발증이 발생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2월 14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위키백과 사전-


힐베르트의 묘비에는 그가 은퇴하면서 행한 고별 연설의 마지막에 남긴 유명한 경구가 적혀 있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독일어: Wir müssen wissen, wir werden wis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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