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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제, 진리의 근원점에 서다.


진리 앞에서서


인간의 삶의 판단에 앞서 자신의 가지는 진리를 먼저 봅니다.

앞서 가진 진리의 경중 혹의 방향에 따라 사람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진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철학적 진리에서 잠시 벗어나 사전을 펼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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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 네이버 국어사전


1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

2 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판단.

 형식적 의미로 사유의 법칙에 맞는다는 의미에서의 사고의 정당함을 의미한다.

3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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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진리는 보편적 사실을 향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편적”이란 것에 주목하면

이 보편성이란 것이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보편적이 사실이라 칭할까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위의 사전 내용처럼 언제 어니서나 불변하는 그것은 어떤 것을 이야기 할까요?.



보편성을 잡아라!


이 보편성이 라는 것, 쉽게 보면 강을 갈아엎고 바닥파는 것처럼

무엇이 보편성에 부합한지 정확히 판단 가능하기도 하지만,

햄릿의 고민처럼 불완전적인 미래에 대해서는 그 보편성이란 것이 어렵기만 합니다.


갈대 같은 마음을 제대로 잡아주는 것을 그리스에서는 철학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의 근원을 명제에서 그 근원을 두었죠.

바로 이 보편성을 적용하기에 가장 좋은 실험의 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보편성을 잡을 가장 좋은 무기는 어떤 것일까요?

가장 가까운 후보는

바로 참과 거짓이라는 기본적인 문제를 다룬 명제입니다.


보편성이라는 큰 수확을 위해

수많은 답을 가진 생활의 혹은 사회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1과 0의 문제,

즉 참과 거짓을 가지는 단순한 문제에서 접근해보겠습니다.


참과 거짓이란 불가분의 관계는

모든 문제에 존재할 것 같지만 사실상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쉽게 만나기는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나와 너가 다르지만

각자 자신을 “나”라고 부르는 것 처럼

개념은 확실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의 참과 거짓은 참 모호하죠.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도구가 더 필요합니다.

바로 수학입니다.



수학, 참과 거짓의 원천이 되다.


참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간단히 예를 들어 보면,

"K대학교 02학번 OU양은 아름답다." 

라는 하나의 문제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K대학교 02학번 OU양”이라는 대상이 “아름답다”라는 것과 연관관계를 지어야 합니다.


이는 내가 보았을 때에는

완벽하고 고귀한 사실이지만 눈이 디옵터 -6이하인 사람에게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죠.

이는 어떠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에서 “나와 너”의 관계처럼

참과 거짓이 모호하게 꼬여있고 그 답은 사실 없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잠재적 범죄자의 99%는 휴대폰을 사용할 때 엄지손가락으로 문자를 쓴다”

이것 역시 대부분 참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범죄자가 한번쯤 핸드폰을 시도해본다면

아마 99% 엄지로 문자를 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면 대부분 99% 엄지로 문자를 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99%의 당위성에대해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처럼 참이나 거짓이 거의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보편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완벽한 보편성이 될 수 없습니다.


정리하면, 위의 두 가지 예처럼

일반적이 생활에서는 그 목적과 상태에 따라서 그 답이 변하기 때문에

아직 참/거짓이 가져야 하는 보편성이 모호하기도 하고 그 보편성이 갖는 당위성의 수준이 낮아지기도 합니다.


이런 완벽함을 갖추기 위해 보편성과 가장 비슷한 수학의 우리는 “명제”를 이야기하며

보편성과 진리에 근접해보고자 합니다. 



수학은 명제 위에서 논리적이 되고 명제는 수학 위에서 당위성을 얻는다.


이는 우리가 수학교과의 한 파트에서

당당히 “명제”란 이름으로 제목을 거는 이유이며

우리가 명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수학을 이용하는 이유입니다.



“명제”에 들어서기

그럼 참과 거짓의 보편성을 찾는 일이 과연 명제와 어떤 관계일까요?

간단히 명제를 정의 해보면


“명제” - 참과 거짓을 명확하게 판단되는 것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명제는 참과 거짓을 위한 수많은 질문들 중에서

우리가 이것은 명확히 '참!' 혹은 명확히 '거짓!' 이라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 꽃은 아름답다”라는 것은

질문은 될 수 있지만 명제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지독한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꽃을 혐오할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명제가 정말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집 강아지는 포유류이다.”는 참이다.

(내가 강아지라 부르는 그것이 다른 사람이 부르는 강아지와 동일하다는 가정안에서요.)

이것은 포유류의 분류에 강아지가 확실히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위는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너무 돌아온 것 같아 정리해보면

이제 우리는 진리를 찾기 위해 보편성을 찾아야 하고

그 중 가장 근원적인 참과 거짓을 판명하기 위해 “명제”가 필요합니다.


또한 이제부터

명제는 이제 가장 큰 친구 수학을 통해서 그 모습이 구체화 될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보편성은 이제 딱딱한 숫자의 놀음에 들어왔지만

신이 그랬듯 고난의 길 뒤에는 위대한 뜻을 내뿜을 것이고

그 목적 뒤에는 보편성을 갖는 진리라는 파트가 그 다음 숙제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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