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수를 사용합니다. 실제로 어떤 교과서는 "수가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까요?"를 주제로 수를 제외 한 일화들을 책의 한켠에 배치해서 수학을 배워야 한다는 뭐 좀 극단적인 의견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수를 통해 수학을 배워야 한다.'에는 동의합니다만, 그를 제거하면 불편하니까 필요하다는 논리에는 살짝 불쾌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수를 먼저 배우고 나중에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모든 수학책에서 가장 먼저 느끼는 기본. '수'를 이야기해보면 그렇습니다.


1. '수'의 어머니는 '수학'일까?

그러기에 우리는 '수'란 것이 어느 곳에서 먼저 정의 되는지 알아 봐야 합니다. 네이버 사전을 인용하자면 '수'란 셀 수 있는 사물을 세어서 나타낸 것이며 두 번째 정의는 자연수, 정수, 유리수, 실수 따위를 통틀어 말한다고 나옵니다. 저는 그리고 그 뒤에 이어서 나오는 한 마디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좁은 뜻으로는 자연수를 가리킨다.'

좁은 뜻으로 자연수를 가리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 유추할 것은 '수'란 것은 본디 수학적으로 정의된 것이 아니라 먼저 실생활에서 태어난 것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태생은 결국 일상 속의 자연수란 모습 이였다는 것이죠. 자연수라는 말은 딱 그 단어를 나누어 생각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자연스럽게 생성된 수'입니다.

사실 자연수를 정의한 페아노 공리는 이미 쓰임과 성질이 모두 정리된 상태에서 실행된 것입니다. 즉, 이미 있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그리고 전문적으로 정의한 것이죠.[각주:1] 다시 말하자면 자연수는 수 체계에 대한 어떤한 교육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물건과 물건 혹은 물건과 상징(손가락 혹은 셈하는 단위)에 일대일 대응[각주:2]으로 자연스레 쓰기 시작한 것이며 이 것이 여러 수 표현체계(로마자, 아라비아자, 한자등)를 거친 후에 정의 된 것이죠.

숫자는 단지 수의 표현 수단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단어 '수'는 본디 수학보다는 그냥 일상용어란 결론이 나옵니다. '공기'나 '운동'과 같은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기는 화학적인 부합물이기 전에 우리가 마시는 것이며, 운동은 우리가 물리적 역학이기 전에 걷고 뛰는 생활인 것입니다. 수도 마찬가지 입니다. 엄격한 '수'[각주:3]란 것은 수학의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수'가 필요하니 '수학'을 하라는 것은 신에게 '피조물'이 필요하니 '공예'를 배우라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참 '예의 없는' 수학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수'에 대해 바른 입장으로 서보자면, "수학에서 '수'가 필요하니 일상을 더 참고하겠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여야 할 것 입니다.

'수'가 삶에서 필요하니 수학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일단 '수'가 일상에서 벗어나고 '수학'에 편입하고 나서는 의미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수학의 많은 논리성에 대한 하나의 위대한 '예시'가 되었습니다. 이만큼 정확하고 확실한 예시가 없지요. 그 후 수와 수 사이의 많고 많은 규칙들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또 어떤 규칙을 찾아내는 반복적인 역사가 거듭될수록 '수'는 독립적인 수학의 분야로  진입합니다. 그 분야가 바로 대수학(algbra) 분야이지요.[각주:4]


2. '수'는 사라지고 '구조'만 남았더라.

이 대수학은 - 특히 추상대수학은 - 수의 체계로 부터 시작합니다. 맨 처음에 언급한 자연수부터 시작하여 정수, 유리수, 실수를 거쳐 복소수 그리고 해밀턴 4원수체 등 여러 수를 거치면서 구조를 만들어 간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덧셈이 가능하고 곱셈에서 닫혀있는 수의 체계가 바로 대표적인 자연수의 구조이죠.

수를 근간으로 한 대수학에서는 수는 사라지고 그 뼈대만 남아 버립니다. 하지만 그 뼈대가 이제 '수'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이제 구조만으로도 대수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1'이란 숫자는 자연수의 '1'이라기보다는 자연수와 같은 구조를 같은 구조를 갖은 원소의 대표적인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설명이 난해 한가요? 수학 외적인 예를 들자면 반복적으로 이미지가 찍어내어지는 앤디 워홀의 그림을 보면 수 많은 마를린 먼로의 그림에서 이미 먼로는 사라지고 '복제'라는 구조만 남는 것과 같습니다.

마를린 먼로는 사라지고 복제만 남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경험 없으십니까? 무료한 시간을 잡아내기 위해서 TV리모컨을 찾습니다. 이리저리 찾아 해메다 주방에서 발견되곤 했죠. 문득 TV는 아웃 오브 안중이 되고 뇌 속의 해마가 이제 다 죽어간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걱정에 TV리모콘을 내려 놓고 고민하다. 다시 TV 앞으로 가서 리모컨을 찾지요. '수'와 '수학'도 이와 유사합니다.

그럼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남았습니다.


3. '구조'는 중요할까?

그럼 대수학이 구조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면이 수학을 '수'에서 '구조'로 이동하게 하는 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구조'가 구조에서 끝이 난다면 의미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적어도 자신의 뇌의 해마가 죽어가는 것이 TV를 시청하는 일보다 중요합니다.

구조는 우선 대표성입니다. 하나의 구조가 정의되면 그에 따라 오는 모든 정리(성질)들이 같은 구조의 모든 것들에 적용이 됩니다. 따라서 수많은 개별적인 것을 구조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예를 들자면 짝수의 모임과 정수는 같은 구조 입니다. 한쪽에 대해서만 완성되어 있다면 그 반대편에 대해서 다시 알아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공식'같은 존재이죠.

또한 '구조'를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구조'의 발견이 보입니다. 결핍되는 구조를 채우기 위해 새롭고 더 강한 체계를 구축함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그 해결을 통해서 점점 완벽함을 모색하게 됩니다. 아마도 수에 대한 글 말미에는 조금이나마 완벽한 구조로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구조의 면으로 수를 써내려 가면 더 완벽함을 발견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고 했지만 '구조'는 하나를 알면 같은 구조 전부를 알게 됩니다. 이러니 어찌 수학이 구조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1. 이에 대해 좀 더 전문적이고 자세한 설명은 다른 글의 링크로 대신하겠습니다. http://holicmath.tistory.com/41 [본문으로]
  2. 일대일 대응의 정의 : http://holicmath.tistory.com/13 [본문으로]
  3. 좁은 의미의 수 [본문으로]
  4. 보통 대수학이라고 하면 방정식의 계산만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대수학은 정수론 선형대수 추상대수 등 수의 체계로 시작되는 모든 분야를 포함하는 학문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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